20180107

 

 

 머나먼 북쪽 지방의 설산은 아무리 높이 솟아있어도, 저 멀리까지 내다보아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죠토에서는 보이지 않는 산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승려들은 이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불탄탑을 향해 기도했다. 나이를 먹은 승려들은 온종일을 기도했고 소년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다. 아침에는 방울탑을 향해, 황혼녘에는 불탄탑을 향해 앳된 목소리로 야무지게 기도문을 외웠다. 열심히 기도한 소년만이 무지개용사로 간택된다는 것은 인주시티에서는 누구든 아는 사실이었다. 생명의 신을 숭배하는 그들이 모르는 것은 생명으로 넘치는 세계를 낳은 창조신의 존재였다. 그래도 크로스는 밤에는 꿋꿋하게 천관산을 향해 기도했다. 소년의 유년기였다.

 

 인주시티의 소년들은 하나둘 수도원에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이단은 수도승이 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마주한 소년의 양친은 드디어 인주시티를 뜨기로 했다. 창조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식한 세계라면 우리에게는 세계를 바꿀 의무가 있다고, 멀고 먼 동쪽으로 항해하는 배에서 소년에게 어머니가 속삭였다. 미개한 죠토가 받아들이지 못한 세계의 진실을, 행성 반대편의 사람들이라면 이해해줄 것 같았다.

 

 알로라에서도 소년은 이단이었다. 섬 주민들은 수호신을 섬겼다. 그리고 열 살이 된 소년은 불꽃 타입 포켓몬이 든 몬스터볼을 받았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말리는 양친을 뿌리치고 소년은 몬스터볼을 손에 쥔 채 마을 축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푸코케코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하는 배틀에서 소년은 형편없이 패배했고, 이긴 아이는 카푸코케코님께 힘을 받았다며 까르르 웃었다. 소년은 강해지리라고 다짐했다. 강해져서 생명의 신도, 창조의 신도 증명해내겠다고, 소년은 이를 갈았다.

 

 머리가 크고 키가 커도, 모든 섬의 왕을 이기고 모든 시련을 넘어서도, 소년은 이단이었다.

 

 

 

 

 

 호우오우가 무지개용사로 간택한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한 인주시티의 소년도, 신성(神性)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시련을 이겨낸 알로라의 순례자도 아닌, 피카츄를 업은 마사라타운의 물러터진 포켓몬 박애주의자였다. 증명하고자 한 신성은 고작 인간의 사악한 마음 하나에도 쉽게 침범당해 썩어문드러지는 연약한 것이었다. 가치라곤 우정밖에 모르는 멍청한 소년의 부름 한 번에 몬스터볼에 잡힌 포켓몬처럼 순순히 오가는 정도의 우스운 신성이었다.

 

 한순간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현란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호우오우는 황홀하게 바라보며 크로스는 간신히 무지갯빛 날갯짓 사이의 숨겨진 연약함을 떠올렸다.

 

 그것이 완전한 이단이 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허황한 인주시티의 승려들의 신앙을 크로스는 더는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 호우오우가 쓰러뜨린 소년을 크로스는 쓰러뜨리지 못했다. 덜 증명해낸 강함만은 미련이었다. 창조의 신은 포켓몬과 인간을 만들어냈고, 무지개신 호우오우를 만들어내 포켓몬의 생명을 관장하게 했다. 창조신은 그러나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하나의 신을 살해당한 이단아 소년은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네가 말하는 창조신은 아마 존재할 거야.”

 

 소우지가 말했다.

 

 “공간을 창조한 포켓몬과 시간을 창조한 포켓몬의 신화는 신오에서는 잘 알려진 신화야.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그 두 마리를 창조한 포켓몬에 대한 신화지. 요즈음은 알 사람은 다들 알지만.”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로 소우지는 크로스가 알던 세계를 흔들었다. 익숙하다는 듯이 석판과 유적과 설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크로스는 평생 본 적이 없었던 머나먼 북쪽의 설산이, 창밖을 내다보면 보였다고 하는 사람이.

 

 “신오의 창세신화가 다른 지방에서는 이단 취급을 받는다니, 놀라운걸.”

 

 루가루간이 크로스를 대신하여 웃었다.

 

 “신오에 가본 적은 없는 거야?”

 “없어.”

 

 꿈속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꼭 가봐. 특히 칸나기타운의 유적이랑 미오시티의 도서관은 네가 꼭 가봐야 할 것 같아. 아, 하쿠타이시티에도 동상이랑 석판이 있어.”

 “천관산은 가본 적 있냐?”

 

 크로스가 설산의 이름을 대자, 미소를 떨어트린 소우지가 서늘하게 대답했다.

 

 “거긴 너 같은 녀석이 갈 곳이 아니야.”

 “시험해 보든가.”

 

 크로스가 몬스터볼을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소우지가 루카리오를 내보냈다.

 

.

.

 

 “창조신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쓰러진 루카리오를 몬스터볼에 돌려보낸 소우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쓰러트린다.”

 

 승리의 흥분을 정돈하며 크로스 역시 가오가몬을 몬스터볼로 되돌렸다.

 

 “믿는 거 아니었어?”

 “창조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녀석은 그야말로 최강이겠지.”

 “그럼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렇게 해서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모독하겠어.”

 “신을 끌어내릴 셈이구나. 그래, 신이 없으면 이단도 없겠지. 혹은 모두가 이단이 되거나. 너를 이단이라고 부른 녀석들한테 복수 하고 싶어서 그래?”

 “웃긴 소리를 하는군. 더 강해지기 위해 기도하는 삶을 그만두고 싶을 뿐이다.”

 “믿기 싫어진 종교는 그만 믿으면 그만이야, 크로스. 그건 온전히 네 자유고, 너는 그러기 위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어. 내가 충고하건대, 무리하지 마.”

 “배틀에서 진 녀석이 하는 말에 무게는 없어.”

 “거 봐, 결국 너를 위해 네 포켓몬이 무리하게 돼. 넌 천관산을 오를 자격이 없어.”

 

 소우지는 곧은 눈빛을 하고서 또박또박 말했고, 목소리는 이기고 살아남는 것과 패배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이루어진 크로스의 세계에 이물질처럼 들어왔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갈 거다.”

 

 나와 함께라고 말하듯이 크로스의 곁을 지키던 루가루간이 비죽 웃었다. 그러자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으로 소우지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나도 같이 갈게.”

 

 

 

 

 

 동행자는 필요 없고, 약한 녀석이라면 특히 필요 없다―그렇게 말한 크로스였지만, 결국 집요하게 구는 소우지를 떼어내지 못하고 나란히 설산을 걷고 있었다. 높게 쌓인 눈 사이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푹푹 잠기는 감각은 크로스와 루가리간에게 있어 사뭇 새로웠다. 반면 소우지는 표백된 듯한 무표정으로, 다만 요령 있게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 더 걸으면 정상이야.”

 

 디바이스를 확인하며 소우지가 말했다.

 크로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조심히 걸어. 여기서 넘어지면 몸이 젖어서 체온이 확 내려가니까.”

 “시끄럽게 구는군.”

 “중요한 거야.”

 

 자, 이쪽으로. 소우지가 또 동굴 속으로 크로스와 루가루간을 안내했다. 천관산은 동굴과 설원의 반복이었다. 동굴로 들어가고, 나와서 설원을 한참 걷고,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눈을 헤치고 걷다 보면 또 들어갈 동굴이 나왔다.

 

 “여기선 바닥 조심하고. 습기가 얼어서 미끄러워.”

 

 “넘어지는 게 무서우면 돌아가면 돼. 시끄럽게 굴 거면 돌아가라.”

 

 “나는 안 넘어지고 안 무서워. 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동굴을 빠져나오자 금빛이 눈을 찔렀다. 반사적으로 찌푸린 눈을 천천히 다시 뜨자 계단과 금색 타일로 된 바닥, 같은 금빛으로 높게 솟은 수많은 창의 위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일순 숨을 쉬는 것을 잊었던 소우지가 호흡을 내뱉자 탄성 같은 소리가 나왔다. 크로스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먼저 마음을 가다듬은 것은 소우지였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여기가 천관산 꼭대기, 창기둥이야.”

 

 “…….”

 

 “시간의 신과 공간의 신이, 여기에 강림했었대.”

 

 그리고 문득,

 

 “그런데 지금은 참 아무것도 없지 않아?”

 “하?”

 “물론 유적은 화려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잖아. 무리해서 올라올 것 없었어.”

 “계속 중얼중얼 시끄럽네 진짜, 너―”

 

 무의식적으로 소우지에게 달려든 크로스가 몬스터볼에서 뛰쳐나온 루카리오에게 움직임을 막혔다.

 

 ―루카.

 

 소우지는 살짝 놀라며 루카리오에게 타일렀다.

 

 “괜찮아, 루카리오. 몬스터볼에 돌아가.”

 

 루카리오의 붉은 시선이 지긋이 소우지를 응시했다. 시선을 온전히 돌려주며, 소우지가 반복했다.

 

 “괜찮으니까 볼로 돌아가 줘.”

 

 소우지가 루카리오의 몬스터볼을 내밀고 버튼을 눌렀다. 루카리오는 반항 없이 붉은 빛의 안내를 따라 캡슐 안으로 되돌아갔다. 루카리오가 안전하게 볼로 되돌아간 것을 확인한 소우지는 다시 시선을 크로스에게로 돌렸다.

 

 “포켓몬은 인간보다 아주 조금 강할 뿐이니까.”

 “뭘 말하고 싶은 거냐.”

 “트레이너가 위험에 처하면 트레이너를 지키려고 하는 포켓몬도 위험에 처해.”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고해성사처럼 진지한 태도로, 소우지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여기에 오려고 하다가 포켓몬을 잃은 적이 있어. 여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데.”

 

 선언을 끝낸 소우지가 입을 꾹 다물었고, 소우지의 저의를 깨달은 크로스의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하! 약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이야기군.”

 

 소우지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표정을 보였다. 크로스는 왠지 흥겨워지기 시작했다.

 

 “나랑 내 포켓몬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그래, 그건 참……”

 

 한숨이 하얗게 나왔다. 크로스의 시야가 뿌옇게 된 사이에 소우지가 문장을 마쳤다.

 

 “다행이네.” 

 

 

 

 

 

  “결국, 창기둥에 별다른 힌트는 없었네. 너는 계속해서 창조신을 찾을 거야?”

 “당연하지. 찾아서 쓰러트린다.”

 ‘쓰러트려서 뭐 하게?’

 

 소우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녀석에게 걱정은 과분하다.

 

 “너와 네 포켓몬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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