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5

 

조수석에 태운 신지는 아직 꿈에서 덜 깬 것 같은 멍한 얼굴이었다. 꿈이라고 한다면 안좋은 꿈이겠지. 레이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악몽이었다.

그래서 레이지는 별 말 없이 운전에 전념했다. 신지를 위로하거나, 격려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펑!’

그때 굉음과 함께 백미러가 번쩍여서, 형제는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았다. 방금 막 떠나온 킷사키 방향. 어쩌면 신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아니, 조용한 킷사키시티에서 저런 소동이 일어날만한 장소는 신전 뿐이었다. 진다이와, 아마 사토시와 그 일행이 그쪽으로 향했겠지.

레이지는 슬쩍 신지를 돌아보았다. 신지는 금새 다시 냉정하고 무관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복잡한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겠지. 그렇게 이해한 레이지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방향은 틀지 않았다. 진다이에 사토시까지 있다면 어떤 문제든 잘 풀릴 것이 틀림없기도 했고, 지금의 너덜너덜한 우리는 발목을 잡기보다 더할까. 아마 신지도, 무표정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선은 집에. 집에 가자.

차창 밖의 풍경은 하얗게, 푸르게 색을 바꿔가며 신오우의 아름다움을 전시했지만,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신지의 눈에 그 풍경은 담기지 않는 듯했다. 잠깐 새에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다. 신지는 거의 과부하 상태였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하드플랜트를 쓴 포켓몬처럼. 마른 하늘에 돌연 배틀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분명 질나쁜 농담이었다. 몇 년의 세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기억에 새겨진 모습 그대로의 얼굴이었던 진다이. 몇 번이고 도전한 끝에 이길 수 있었다고 천진하게 웃던 사토시. 조종당하듯,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신지는 강요받았던 배틀. 이후로는 쭉 나쁜 기억의 재현이었다. 재연이었다. 하지만 구원의 줄을 내려준 것은 형의 제안이었다. 사토시에게 이길 수 있다면. 어이없이 알량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존심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심한 트레이너에 한심한 포켓몬이다. 질 리가 없어.

하지만 그건……

…….

레이지는 어느새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보곤, 비축하고 있던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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