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8

 

 

 "아크로마!"

 "메이 양…?"

 와락, 메이가 달려들어 아크로마를 껴안았다. 둥글게 말아올린 밤색 머리카락이 깜찍하게 찰랑거렸다. 갑작스레 가해진 무게에 잠시 표정을 잃은 아크로마는 이내 잔잔한 미소를 되찾았다.

 "아크로마, 무척 기쁜 일이 있었어! 뭐~게?"

 메이의 분홍빛 뺨과 맑게 빛나는 갈색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며, 아크로마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이성적인 회색의 과학자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다.

 "뭘까요, 저로써는 알 수가 없네요. 너무 과학에 잠겨 산 까닭일까요,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놋색의 문장에도 메이는 실망하지 않고 고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크로마, 고지식해. 으음, 있지…,"

 "예, 말씀하세요."

 경미한 호기심이 아크로마를 내리쳤다.

 "휴우 쨩이 내 꽃, 받아줬어!"

 메이가 행복한 표정으로 한 예상치 못한 말에, 아크로마는 굳이 놀라움의 기색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신(新) 플라즈마단과 게치스를 붕괴시키고 전설의 용을 포획한 잇슈 지방 챔피언, 서브웨이 마스터이자 뮤지컬 마스터, S급 포켓우드 스타도, 결국은 소녀군요. 아크로마가 속으로 중얼였다.

 "축하드립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이 양은 손색없는 여성분이시고, 애초부터 당신은 휴우 씨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시니까요. 그가 속마음을 숨겼다.

 "에헤헤-"

 벚꽃향 나는 웃음이 겨울의 한기를 죄다 날려버렸다. 동시에 아크로마의 얼어붙은 심장이나 뇟덩어리도 녹여갔다.

 

 "그런데, 여기로는 왜 오신겁니까?"

 "그냥, 가장 먼저 아크로마에게 와서 자랑하고 싶었는걸?"

 "저요?"

 아크로마는 스스로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값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응! 왜냐면, 아크로마는… 아빠 같아."

 "아버지? 메이 양의 아버지는,"

 무심코 말하자, 갑작스레 진지한 시선―그가 처음으로 메이를 만났을 때, 그녀에게서 받았던 마음을 닫은 과묵한 눈빛―이 날아들어 아크로마는 당황하여 입을 다물었다. 반듯한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없어."

 메이가 단호하고 짧게 대답했다.

 "--,"

 아크로마는 입을 벌렸으나 소리는 없었다. 메이가 따뜻한 웃음으로, 내쫓은 아크로마를 봄의 정원에 다시 들여주었을때에야, 아크로마 역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크로마는 언제까지나 여기서 날 기다려줘, 꼭."

 "알았습니다, 메이 양."

 무심코 아크로마가 대답했다. 사실 그것이 가능할지는 아크로마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말해버린 것은 주워담을 수 없었기에 아크로마는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끝에 '양'자 빼버리면 안돼? 거리감 느껴진단 말야."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메이 양. 아니, 메이."

 "응, 그렇게!"

 환호하며, 메이가 아크로마의 다소 작은 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면, 메이, 즐거운 날이니, 작은 추억을 남겨보시지는 않겠습니까?"

 "?"

 의아해하는 메이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큰 숨을 들이마쉬고, 용기를 내어 아크로마가 제안했다.

 "1시간 정도, 짧게 배 여행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놀란 메이는 소리쳐 물었다.

 "이 배,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랄까, 그냥 물 위에 떠다니는것도 가능한 거였어?! 배를 둔갑한 비행선이 아니였던거야?!"

 "예. 그럼, 어떠신지?"

 "좋고말고!"

 즐거워하는 메이를 보며 아크로마 역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감정의 연쇄는 아크로마에게 있어 일종의 특이한 과학이었다.

 

"메이, 여기서 계시는 것보다 갑판에 잠시 나가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마는?"

 조종석에 앉은 아크로마가 곁의 메이에게 제안했다. 메이가 물었다.

 "좋은 것?"

 "나가시면 보이실겁니다. 과학과 자연이 낳은 작은 선물입니다."

 여전히 짐작가는 곳이 없는지, 메이가 갸우뚱거리면서도 대답했다.

 "응! 그럼!"

 그렇게 메이가 조종실을 뛰쳐나갔다. "달도 무척 아름답고요," 속삭인 아크로마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로.

 

갑판은 마치 달콤한 아이싱으로 꾸며놓은 초콜릿 케이크 같았다. 메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하얀 융단에는 고운 발자국이 새겨졌다. 은가루는 바람의 지휘에 따라 화려한 무용을 선보였고, 관중 역할의 메이는 환호해주었다.

 "눈이다!!"

 환호성을 지르며 빙그르르, 메이는 관중석을 뛰쳐나와 눈송이와 함께 어우러져 춤추었다. 그녀의 환희는 조종실에까지도 전해져, 아크로마는 긴장을 풀고 다만 조용히 미소지었다. 기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가 중얼인 단어들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부서져 갑판 위의 메이에게는 닿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아크로마는 전자 핸들을 돌렸다. 낮은 목소리로 흥얼인 캐롤은 그 스스로가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끔찍한 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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