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가 처음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는 3일만에 상록시티 체육관 트레이너에게 발견되었다. 연락을 받자마 자 뛰쳐온 듯 헉헉거리며 동굴에 찾아온 그린에게, 레드는 체육관을 사유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린은 레드를 죽이 겠다고 했다. 그린의 등살에 못이겨 집으로 돌아간 레드는 영자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겨우 3일이었다. 그린은 태초마을에서 3일이면 장례 의식을 다 치룰 수 있을 시간이라고 했다. 장례 문화에 는 지방별로 차이가 있어서, 무지개시티나 노랑시티가 되면 하루만에 끝나기도 했다. 가장 길게 장례를 치루는 보 라시티의 장례식도 현대에 와서는 일주일을 넘기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트레이너에게 있어서는 겨우 3일이었다. 레드가 석영리그 두 번째 챔피언이 되고서부터 그만두기까지의 시간도 딱 3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레드는 사천왕과 그린을 꺾고 챔피언이 되었고,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고, 밤에 살짝 석영고원을 빠져나왔고, 아무도 찾지 못할 장소를 찾아 블루시티의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그린에게 발견되었다. 

 

이수재는 소년을 기억했다. 

포켓몬과 합쳐진 자신을 구해준 것은 지나가던 트레이너 소년이었다. 포켓몬 마니아니, 포켓몬 전송 장치니 하며 자신을 소개하던 내내 소년은 입을 꾹 다문 채 과묵하게 있었다. 소년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몬스터볼을 쥐 었다 펼쳤다 하다가, 딱 한 마디—“나도 포켓몬을 좋아해.”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이수재는 소년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 같다.  

포켓몬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는 어린 아이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포켓몬 리그에 꿈과 야망을 품는 아이 도 있고, 이 세상의 모든 포켓몬을 만나보고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어하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 은, 단지 고향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모험을 떠난다. 

그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아이들이다. 어째서인지 주변의 인간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해도, 결코 그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했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은 나이가 차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찾아 떠난다.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지 어떤지, 이수재는 알지 못했다. 이수재는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수재에게는 가족이 많았다. 가족은 점점 줄어가는 추세였지만, 이수재가 소년이었을 적에도 이수재만큼 가족이 많은 사람은 드물었다. 오박사에게 듣기로는, 먼 옛날에는 가족의 수가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오박사도 손주가 두 명 있었다. 태초마을에서 세 명이면 큰 가정이었다.  

이수재에게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다. 이수재 본인까지 해서 네 명이고, 세대로 말하자면 세 세대다. 이수재는 살면서 그런 대가족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커다란 편이 아닌 금빛시티의 집이 종종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금빛시티 대저택’으로 불리는 이유였다. 

가족이 많으면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다. 포켓몬센터에 갈 때마다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걸어오는 연락 을 받고 있으면, 몸은 여행을 하고 있더라도 마음은 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차피’ 라는 마음으로, 이수재는 소년 시절 구태여 모험을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대신, 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수재는 훗날 관동지방의 마을에서 벗어난 곳에 땅을 사서 이사했다.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가족을 가진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둘 다 있는 이수재의 경우, 모험을 떠나는 일따 위 이론상의 계획으로도 세울 수 없는 몸이다. 어차피 호전적이지 않은 성격의 자신은 동굴을 통과하다가 골뱃의 간식거리로 전락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이수재는 정착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레드는 모험이 어울리는 아이였다. 

자신의 오두막에 찾아온 레드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수재는 소리 높여 웃었다. 

니 진짜로 석영리그 챔피언을 할라 캤나? 

레드는 대답 없이 더 내려가지 않는 모자챙만 만지작거렸다.   

“... 알았다. 내가 오박사한테 니 살아있다고 전해줄께. 그라모 오박사가 지 손주랑 니 엄마한테 다 전해줄 끼라. 니는 가고 싶은 데 가서 살고 싶은 대로 살고, 가끔가다 포켓몬만 잡아다 박스로 보내라. 그렇게만 하모 내 다 알아서 얘기해줄께.”

 

레드의 박스는 텅텅 비어 있어서, 새로 들어오는 것은 바로 눈에 띄었다. 보낸 것은 알아서 놓아주든가 박사 에게 보내든가 해달라는 것이 레드의 요청이었다. 레드는 박스에 포켓몬을 쌓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은 레드의 박스에 롱스톤이 들어왔다. 이수재는 새로 들어온 롱스톤을 오박사에게 보내며, 레드로부터 의 선물이라고 전했다. 

레드는 오늘도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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