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워닝: 그루밍범죄를 연상시킬 수 있는 묘사
전편: https://thesunlightturnedharsh.tistory.com/5
기억 속의 그 미소는 여전히 시원스럽고, 반짝반짝하고, 아름답다.
배에서 내리자고 마음먹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이런 이야기를 앞에서 꺼낼 수 있을까. 지난 일이다.
우리는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서 내가 등장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신은 스크린 안의 나를 앞에 두고 살아 숨쉬는 나를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어느 쪽도 보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틀에서 패배해야 사랑에 가능성이 생기는 각본이었다. 역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이었다.
정말로 사랑에 빠지기 쉬운 순간은 상대방이 약점을 보인 그 순간이다.
아니면 내가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남자와 엮인 걸지도 모른다. 남의 약점을 파고들고, 누군가를 오롯이 손에 넣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그와 나는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준 적이 없었다.
형식상의 사과와 지킬 수 없는 약속, 변명 같은 이상을 늘어놓던 미려한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변명이 많은 사람이었다.
‘미안합니다.’
‘만족시키세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과 있으면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뢰, 사랑, 그 모든 것을 부디 저에게 가르쳐 주시길. 변명도 많고 요구도 많은 사람이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꾸지 않은 채로 두면 된다. 정직함이 최선이고 결핍은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아닌 무언가로 변화하려고 했던 것은 비극이었고 아크로마는 포켓몬을 변화시키고 합체시키고 분리시키는 기계를 계속해서 개발했으며 그것도 비극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비극은 아크로마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일이었고 메이가 바로 신형 아크로마머신이었다.
당신이 말했었죠. 언제까지나 여기서 기다려 달라고. 저, 여기에 있겠습니다.
불을 끈 조종실에서 그가 속삭였다.
당신도 계속 내 곁에 있어줄 건가요? 메이,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키스 하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상한가요?
그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휴우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 꽃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은 낯빛조차 변하지 않았다고. 속박하려 하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있어줬던 사람은 너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고, 이제 와서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사람이 특별했다고 말하기에는 수치스러웠다.
“국제경찰 핸섬이다. 네오 플라스마단에 과학자로서 가담했던 아크로마라는 남자를 찾고 있다.”
어느 날 신오에서 온 경찰이 말했다. 그는 플라스마단의 보스였어요. 그 죄목은 게치스에게 떠넘겼나 보네요. 주변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상대라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닐까요? 메이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만
“못 잡을 거예요.”
한 번도 제 손에 들어온 적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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